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나는 직업상 늘 책을 접하는 때문인지, 좋은 책을 골라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왜 사람들은 책을 고르기 힘겨워하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기관이나 유명인사가 추천한다는 추천도서가 널려 있고, 서점에 가도 서점이 추천하는 책, 편집자가 추천하는 책, 다수가 선택한 베스트셀러 목록 등이 널려 있는데 왜 굳이 아는 사람한테 책을 좀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추천도서라는 단어에서 어렴풋이나마 '상업성'을 눈치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책을 고르는 일은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또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시장이든 그렇겠지만, 좋은 물건이 있으면 얄팍한 상술만 판치는 불량물건도 있는 법이다. 일반 소비상품이야 계속 반복 구매해야 하는 특성상 한번 소비자가 속고나면 그 다음엔 구매를 하지 않게 되지만, 책은 한번 소비자를 속여(?) 구매를 하게 만들고 나면 그 다음에는 다시 다른 타이틀로 가면을 쓰고 나타나 또 한번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주머니를 털린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선전과는 다른 허술한 내용과 빈약한 논리에 실망하고 나서도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논리에 마음을 추수리고만다.
물론 여러 기관이나 유명인사들의 추천도서를 보면 좋은 책이라 생각되는 경우도 많지만, 가끔은 개인적인 이해득실이나 혹은 편향된 사고를 반영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소위 책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추천하는 책의 선정기준을 함께 밝혀준다면 이러한 오해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나의 책 선정기준은 뭘까? 이를 말하기 전에 먼저 책읽기의 목적이 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뜻 싶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진부한 소리말고, 정말로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책읽기의 목적
어떤 사람은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과거에는 직접 스승에게 지식을 전수받지 않는 한 책은 거의 유일한 지식전달 매체였다. 하지만 요즘엔 책말고도 신문, 잡지, 영화, 다큐멘터리, 인터넷 등 우리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소스는 얼마든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물론 재미있는 소설도 막상 영화화 되고 나면 아쉬운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단지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다는 대답은 책읽기의 당위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한듯 싶다.
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하루 수천번의 의사결정을 한다. 가족과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한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사업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지나간 시간동안 우리가 내린 수많은 의사결정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모습 역시 앞으로 내리게 될 수많은 의사결정의 누적적 결과이다.
그런 의사결정과 판단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필요한데, 이러한 생각의 원천은 자신의 경험과 간접경험에 바탕을 둘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판단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상은 책이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멀리해야 할 책
사람들의 필요와 기호가 다 다르기 때문에 좋은 책을 추천하기 보다는 멀리해야 할 책을 가리는게 더 중요할 듯 싶다. 어떤 이는 책이란 어떤 것이든 다 도움이 되니까 골고루 읽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난 그런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음식이든 골고루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양소는 별로 없고 칼로리만 높은 몸에 이롭다고 볼 수 없는 음식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칼로리도 몸에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 음식은 보다 나은 음식을 먹는 기회를 뺏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가리는 첫번째 기준은 저자가 얼마나 참신한 견해를 내놓았는가 하는 "주장의 참신성"에 있다. 책이라면 무릇 책으로서의 무게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의 뻔한 주장을 포장만 달리해 내놓는 책은 상술로 포장된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책이라는 무게로 자신의 견해를 세상에 내놓으려면 지금껏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지배적인 견해를 반박 내지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책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을 더욱 익사시킬 수 있도록 책을 하나 더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위 "책공장"이라는 유명인사들을 아주 싫어한다. 모름지기 생각의 힘과 지혜가 넘쳐나서 주체하지 못해 책으로 탄생해야 하거늘, 일년에 몇권씩 책을 쏟아내는 사람은 분명 남의 생각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대충 팔아먹고자 하는 상술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 장사꾼들은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도 많다. "긍정의 힘"(물론 나는 긍정적인 생각의 힘을 믿는다) 이라는 지긋지긋한 컨셉을 이렇게 저렇게 포장해서 열심히 반복해 팔아먹는 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을 공경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뻔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다. 그런 상술이 뻔히 보이는 책들은 나름대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기는 하겠지만, "주장의 참신성"이라는 나의 선정기준으로 볼 때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책들이다.
또 하나 책을 가리는 중요한 기준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논리적이고 타당한 증거나 사례를 대었느냐 하는 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일리는 있다. (모든 영화나 소설은 8개로 분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한 "주장의 참신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참신한 주장(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적절성과 타당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시크릿"은 이러한 나의 두가지 기준으로 볼 때 추천하기 어려운 책이다. 우선 "긍정적인 사고"가 성공의 힘이 된다는 주장은 지난 100년간 수많은 저자들이 수백번도 더 써먹은 낡은 주장이다. 저자(솔직히 이 책의 저자는 한명이 아니다!)는 이러한 잘 팔리는 주제를 세계적으로 잘 팔아먹기 위해서 "전 세계 1%의 성공한 사람들만 알고 있던 비밀"이라는 혹하는 포장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생각이 좋다"는 메시지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주장의 참신성"이라는 첫번째 기준에 낙오했다면, 두번째 기준인 "증거의 적절성과 타당성"이라는 기준은 충족했을까? 역시 한참 미달이다.

'시크릿'은 긍정적인 생각이 전파가 되어 우주로 나아간 뒤, 다시 발신자인 자신에게 긍정적인 것을 끌어서 되돌아 온다는 황당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위 "신앙간증"식 방법을 택했다. 신앙간증이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세사람이 같은 주장을 하면 사람들이 그 주장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시크릿에는 여러 공동저자(분명 시크릿은 여러 '꾼'들의 합작품일 것이다)들이 신앙간증식으로 나와 자기 주변의 놀라운 경험(?)을 간증하면서 사람들을 "믿쑵니다!"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윈프리 같은 유명한 입들이 바람잡이로 조연에 나서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장사한번 크게 잘 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되는 책의 예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성공'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요즘 책 중에서 고르라면 난 '아웃라이어'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기회의 누적적 이득'이라든지, '1만시간의 법칙'이라든지, '문화적 유산의 힘' 과 같은 핵심주장들이 100% 말콤 글래드웰의 독창적인 주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의 요인'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놓고 단순히 '내면적인 요인'(긍정적 사고의 힘 혹은 1만시간의 법칙)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여러가지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 요인들을 살펴보고, 또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신앙간증'식 방법이 아니라 관련된 사례와 증거를 수집해 열거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내가 신앙간증식 증명방법을 싫어하는 이유는 생각의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사람들을 '혹'하게 만든다. 사실 신앙간증식 방법은 사실 책을 팔아먹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는 방식은 쉽게 역풍을 맞는다. 저자가 나열한 사례는 그 타당성에서 반대론자들의 공격을 받기 쉽다. 하지만 '화폐전쟁'이 비록 싸구려 음모론이라고 비판을 받더라도, '아웃라이어'에서 주장하는 '집중양육의 효과'가 비판받는다고 하더라도, 주장의 참신성과 증거의 타당성이라는 나의 책 선정기준으로 볼 때는 비슷한 가격의 '시크릿'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